이솝 아로마오일과 버너. 그리고 시간적 사치스러움.

 몇년 전부터 갖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었다. 호주의 스킨케어 브랜드인 이솝(Aesop)의 황동으로 만들어진 오일 버너. 기능으로만 치면 아로마오일을 데워서 발향하는 것, 그뿐이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이솝의 오일버너는 그 단순한 기능에 20여만원을 사용해야하는, 나에게는 일종의 사치품에 가까워서 그동안 구매를 망설였다.
https://kr.aesop.com/kr/home-fragrance/design-objects/brass-oil-burner/HM01.html

 그런면에서 새로 옮겨온 보금자리와 불타오르는 코스피..에 비례해서는 소박하게나마 생긴 용돈의 여유는 이 사치품을 소유하기에 아주 좋은 핑계거리였다. 2천만원짜리 시계 대신에 20만원짜리 오브제로 나의 허영심이 채워진다는 사실에 나름의 안도감을 가지며 이 물건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근처 백화점의 이솝에서는 판매중이지 않았기에 온라인으로 사야하나 고민하던 중, 우연찮게 발견하고 들러본 서촌의 이솝에서 판매중이었고 그 길로 바로 구매해왔다. 

 이솝에서는 함께 여러 향기의 아로마오일들을 판매중이었다. 그 중 하나가 아내가 애용하는 우드스틱과 비슷한 나무, 흙, 허브향같은 향을 내어서 나에게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오일을 함께 구매했다. 향기 이름은 베아트리체이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고 우리 몸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흙내음과 시트러스 노트의 따뜻하고 생기 넘치는 블렌드” 라고 설명되고 있다. (향: 우디, 시트러스, 스모키 / 주요성분: 파촐리, 시더 아틀라스, 레몬그라스)
https://kr.aesop.com/kr/home-fragrance/oil-burner-blends/beatrice-oil-burner-blend/BB21.html

 아직은 별다른 기능이 없는 그림이나 장식물에는 몇천원을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데, 아직 그만한 자산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걸까. 반대로 조금이라도 기능이 있는 물건에는 그래도 욕심이 생기는 건,, 그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직접 촉감을 느끼고, 사용하는 그 과정에서의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싶다. 묵직한 뚜껑을 들어올리고 작은 양초를 하나 넣어서, 불을 붙이고 또 뚜껑을 닫기. 아로마오일을 2-3방울 똑똑 떨어트리고는 공간을 향으로 메우기까지 기다리기. 그 과정을 천천히 이어가는 내 모습에서 자기만족감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물건이라는 점. 금전적 사치스러움보다 시간적, 경험적 사치스러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이 생겼음에 만족스러워진다.

 사용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오일버너는 인센스나 향초처럼 발향 즉시 공간에 향을 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검색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오일버너와는 다르게, 이솝 오일버너는 오일에 향초의 불꽃이 닿으며 직접적으로 끓이는 방식이 아니다. 뚜껑에 뚫린 구멍을 통해 가장 센 열원은 통과해 나가고, 복사열로서 데워지는 두꺼운 황동소재가 아주 조금씩 오일을 기화시킨다. 그래서 향기를 퍼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오일 자체가 타거나 끓는 느낌이 없어 더욱 잔잔한 느낌이다.

 오래걸리는 그 시간덕분에 루틴에서는 여러가지 시도들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내 루틴은, 일어나고나서 바로 오일버너를 가열하는 것이다. 이후 물도 한 잔 마시고, 요가매트를 펴서 폼롤러를 활용해 어깨와 등을 스트레칭한다. 스트레칭을 하며 살포시 아로마향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스트레칭을 멈추고 앱을 통해서 10분짜리 명상 시간을 갖는다. 명상을 마치고 나면 세면을 포함한 출근 혹은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오래 걸리는 은은한 발향덕분에, 아침 준비를 마치는 그 시간까지 천천히 방안가득 향이 퍼진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나면 향초를 끄고, 마른 헝겊으로 오일이 굳지 않게 닦아낸다. 이런 루틴을 한 방에서 계속 유지하다보니, 어떤 날은 퇴근 후에도 그 방에선 아로마향이 느껴진다. 실제 사용하는 시간적 사치스러움이 20-30분가량이라면, 그 여유로운 기분만큼은 내 하루에 계속 연장됨을 느낀다.

 이 황동버너 관련해서 얼마전엔 아주 아까운 일을 겪었다. 아내와 시드니를 여행가게 되었고, 정성들여 찾은 숙소였던 [Paramount House Hotel] 은 너무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이 호텔은 역시나 이솝의 클렌징제품들을 어메니티로 제공하는데, 판매도 내부에서 하고있었다. 그 밖에도 옷이나 슬리퍼 등 다른 굿즈도 함께 판매중이었고, 특히 눈길이 가는 인센스스틱 홀더가 있었다. 작고 야무지면서도 무언가 이솝의 오일버너와 아주 비슷한 느낌의 묵직한 황동재질로 만들어진. 설명을 읽어보니 Henry Wilson이라는 호주 디자이너의 판매 제품이었다. 그의 쇼룸을 방문해보고 싶었지만 우리의 동선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위치인지라 여행 중 들르지 못하고 돌아와야만했다. 이 글을 쓰며 이솝의 황동버너의 홈페이지 상세 설명을 보게되었는데, 예전에 어렴풋이 들었었던 제작 협업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바로 Henry Wilson. 역시나 같은 작가의 손길이 닿은 제품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따로 동선을 내어서라도 그 쇼룸에 꼭 들렀으리라 후회아닌 후회를 하며, 또 하나 시드니를 재방문하고 픈 이유가 늘었음에 위안을 삼았다.
https://maps.app.goo.gl/RsxpiNg4agc2nU2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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