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조금이나마 덜 싫어졌다. Blundstone Chelsea boots.

 어릴땐 겨울이 싫었다. 추위에 온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싫었고, 축축하게 녹아 흙탕물이 된 눈이 내 신발을 더럽히는게 싫었다. 지금도 겨울은 여전히 싫다. 추위에 온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배가 되어 싫고, 눈길에 부모님이 넘어지진 않을까, 아내의 운전길이 위험하진 않을까 걱정되어서 싫다.
 한 가지 개의치 않게 된 점이 있다면, 눈을 밟는 내 신발이 더럽혀질까 걱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건과 옷은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내 성향상, 눈이나 비가 오면 쉽게 젖어 더러워지는 신발들은 꽤나 신경쓰였다. 특별히 고가의 스니커즈가 아니더라도, 아깝고 또 찝찝했다. 그래서 눈 오는 겨울날은 눈을 밟기 싫었고, 비가 오는날은 외출하기 꺼려졌다. 밖을 나서는 첫 발걸음부터 기분이 별로인데 하루종일 기분이 상쾌할리가. 
 그래서 언젠가 겨울엔 덕부츠를 사서 신어보기도 하고, 어떤 여름엔 고무 재질의 보트슈즈를 사서 신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신발들, 꽤나 불편했다. 덕부츠는 무겁고 가뜩이나 짧은 다리를 더 짧아보이게했다. 보트슈즈는 물에 젖지는 않아도, 물을 막지는 못해서 내 발을 찝찝하게 적셨다. 장화를 신어볼까고민하면서도 그건 또 유난스럽지 않나 라는 생각에 아직 구매해본적은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블런드스톤이라는 호주의 첼시부츠를 알게 됐다. 


 첼시부츠는 내게는 구두의 영역이었다. 학생일때는 물론이고 직장인이 되고서도 구두는 자주 착용하는 품목도 아니었고, 격식과 불편함이라는 범주에 묶여있어 쉽사리 시도하는 품목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평상시에도 더 포멀한 착장이 더 마음이 편해지고, 취향 역시 다양한 디테일과 화려함보단 안정적인 단조로움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어갔다. 그래도 불편할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품목 중 하나가 첼시부츠였는데, Youtube와 온라인 리뷰들에서 운동화보다 편하다라는 코멘트들에 귀가 혹해 신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신발편집샵을 방문했고, 시착을 했다. 첫인상은 꽤나 단단한 느낌이랄까. 푹신하진 않아도 꽤나 단단하게 땅을 딛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착화감이었다. 금액이 꽤나 비싸 알아보다보니, 호주 직구의 가격이 합리적이었기에 610블랙 모델을 먼저 주문했고, 어느새 브라운까지 주문하여 총 두켤레의 브라운스톤을 신은지 벌써 일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일년의 적어도 300일 이상은, 두 켤레의 블런드스톤을 주구장창 신고다녔다. 신기하게도 겨울에도 그리 발이 시리지 않았고, 여름에도 그리 답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이오거나 비가 와도 신경쓰이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오일을 머금어 방수가 되는 재질이다보니, 특별히 젖거나 더렵혀지지 않았다. 어떤 날씨에 신어도 마음이 놓여 더 자주 신게 됐다. 동시에 레이스리스의 포멀함과 두터운 고무 밑창의 러프함이 함께 있다보니, 여러 착장에도 잘 어울렸다. 청바지에도 그리고 치노팬츠나 슬랙스에도 잘 어울려서 옷을 골라입을 때 특별히 신발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할아버지가 된 나도 여전히 산뜻하게 신어줄 수 있는 그런 모습이기에, 내가 목표로하는 옷장에도 잘 어울리는 신발이다.

 덕분에 구두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도 나의 편견이 사라졌다. 예전엔 양주가 위스키, 데낄라, 보드카 등 그 많은 외국술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무엇인지 모를 어려움이 있었던 것처럼, 구두라는 카테고리로 묶여있던 여러가지 가죽 제화들이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내 취향과 가치관에 맞는 물건이 이렇게 하나 둘 쌓여감에 문득 마음이 더 편안하다.